오늘은 숫자 하나 때문에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거래처 쪽에서 상품 상세정보를 자동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손보다가, “연비 등급”이랑 “젖은노면 제동력 등급”을 화면에 띄우는 부분에서 손이 딱 멈췄다.
API에서 내려오는 값은 그냥 1부터 5까지의 숫자였다. 등급이라고 하면 당연히 1등급이 제일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에너지소비효율 등급표도 1등급이 제일 좋은 거니까, 똑같은 식으로 “1등급”이라고 화면에 써 넣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확인해보니 그게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AI한테 물어보니, 기존에 쓰고 있던 코드에도 비슷한 기준이 하나 있긴 했다. 숫자가 ‘1’이면 우수한 걸로 보고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 관례를 그대로 따라서 “1등급이 최고”라고 표시하면 되겠다 싶었다.
여기서 또 한 번 헷갈렸다. 이 숫자가 정말 그 관례랑 똑같은 방향인지 아무 데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비개발자 입장에서는 숫자 하나 보고 “이게 맞겠지” 하고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크다. 어차피 대충 맞는 것 같으니까 그냥 올려버리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내부 관리 화면이 아니라 손님이 직접 보는 화면이었다. 만약 방향이 거꾸로라면, 연비가 나쁜 상품을 “연비 1등급”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된다. 손님 입장에서는 숫자 등급을 그대로 믿고 상품을 고를 텐데, 방향이 반대로 표시되면 그냥 오류가 아니라 거짓 정보를 보여주는 셈이 되는 거다. 비개발자 입장에서는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코드가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숫자를 믿고 써도 되느냐의 문제였다.
AI에게 같이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자신 있게 뭔가를 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이 숫자가 어느 방향인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는 점을 먼저 짚어줬다. 1부터 5까지 숫자가 있는데, 이게 유럽 타이어 라벨 등급(A부터 E까지)을 숫자로 바꾼 건지, 아니면 우리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처럼 1이 최고인 건지, 둘 다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AI가 대신 정답을 알려준 게 아니라, “이건 추정으로 확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분명히 해준 거라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그래서 같이 두 가지를 하기로 했다. 하나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숫자 방향을 직접 물어보는 문의 문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어떤 숫자가 최고 등급인지, 우리나라 등급 기준과 같은지, 혹시 유럽 등급을 숫자로 바꾼 거라면 매핑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었다. 또 하나는,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미 그 거래처 사이트에 등급 표기가 노출돼 있는 상품이 있다면, 같은 상품의 API 값과 사이트 표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방향을 꽤 정확히 짐작할 수 있다는 거였다.
돌아보면, 이게 이번 작업에서 제일 크게 배운 부분이었다. AI가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과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호라는 거다. 예전 같았으면 AI가 뭔가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면 그냥 믿고 넘어갔을 텐데, 이번엔 오히려 AI 쪽에서 먼저 “이 부분은 추정이라 위험하다”고 선을 그어줬다. 그 덕분에 나도 그 문구를 그대로 화면에 올리지 않고, 확인 전까지는 등급 표시를 보류하기로 했다.
비개발자 입장에서 다시 정리해보면, 숫자 하나를 화면에 올릴 때도 “이 숫자가 어디서 왔고, 어떤 기준으로 매겨진 건지”를 한 번은 따로 물어봐야 한다는 거였다. 겉모양이 등급표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게 바로 신뢰할 수 있는 등급표는 아니었다. 외부에서 받아오는 데이터는 생긴 모양만 보고 섣불리 내 쪽 기준에 맞춰 해석하면 안 되고, 근거가 확인될 때까지는 일단 멈춰두는 게 맞는 선택이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배웠다.